SERA OH

  • 2023. 3. 24. - 2023. 4. 6.

    ⟪헤엄쳐 만든 섬⟫, 오세라 개인전

    오세라 작가는 첫 개인전 《헤엄쳐 만든 섬》에서 바닷물에 푹 젖은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프리울섬의 사진을 선보입니다. 필름 한 롤에 담긴 흐릿한 섬을 인화하며 적셔내고 건져낸 멀어진 시간을 펼쳐봅니다.

  • “처음 섬으로 향하는 헤엄이 있었던 순간,

    잠시 숨이 막혔던 순간,

    섬에 도착한 순간,

    그리고 푹 젖은 신체와 옷가지가 뜨거운 햇빛 아래서 마르는 순간까지.

    멈추었던 숨을 다시 쉬며 안도의 순간으로 도달한,

    헤엄쳐 만든 섬.”

    - 작가 노트 중 -

  • 중첩된 시간과 필름 한 롤

    비평 | 황지원

    사진은 현재의 한순간을 셔터음과 함께 포착하여 과거의 한 점으로 영원히 박제한다. 따라서 사진은 지시체가 ‘실존했었다’는 즉, ‘그것이-존재-했음 ça-a-été’이라는 존재론적 증거가 되는 매체이다.

    그러나 단순히 실존적 측면이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사진이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자. 현대 철학에서 시간성을 탐구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연장하여 사진의 존재론을 분석한다. 데리다는 이전까지의 서구 철학이 동일한 의미를 규정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보고, 그 안에서 속하지 못한 ‘차이’와 ‘규정되지 못한 의미’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차이는 시간의 근원적인 특성인 지연에서* 만들어진다. 즉, 데리다에게 시간은 끊임없이 지연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지연 속에서 어떠한 의미는 하나로 규정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차이를 생성해낸다. *때문에 그는 차이와 연기를 동시에 의미하는 ‘차연(différa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데리다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의미가 확정되지 못하게끔 만드는 성분인 ‘틈’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카메라의 셔터음 소리는 실존을 연기하는 소리이다. 사진에서 시공간은 하나로 고정된 듯 느껴지지만, 언제나 다르게 찍힐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현재-미래에 나타난(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진에서의 시간성이 과거의 한순간이 아니라 여러 시간성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사진 이미지에는 틈으로 인해 의미 체계로 환원되지 못한 ‘나머지’가 존재하며, 끊임없이 연기하고 있는 시간이 찍혀있다. 

    다시, 우리는 세상의 한 단면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눌렀다. 나는 내 앞에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 혹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 어떤 공간을 찍는다. 필름이라면 현상, 인화 과정에서 내가 본 현실과 달라질 미세한 혹은 거대한 변동 가능성을 겪으며 이미지가 탄생한다. 비로소 우리의 기억을 물질화한 이미지를 보게 되었을 때, 이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들을 마주하기도 하고, 비의도적으로 찍힌 존재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 안에는 이미 찍혀버렸지만 그때의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것, 미래의 내가 발견하게 될 것들이 한 이미지 안에 상호 교차적으로 존재한다. 이미 일어나버린 과거와 지금도 흘러가는 현재, 가능성으로 도래할 미래가 서로 중첩되어 있다. 모든 시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 따라서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담기 때문에 오히려 ‘통제할 수 없음’과 엉켜있다. <헤엄쳐 만든 섬>은 오세라 작가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프리울섬에 들려서 찍은 한 롤의 필름 사진이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만든다. 그는 ‘바닷물에 젖은 필름’이나 ‘고장 난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진을 찍고, 인화, 현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얼룩, 먼지, 현실과 다른 색감, 물 자국’을 활용하여 “손상된 필름이 어떤 희미한 기억의 장면”을 불러일으키는지 실험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진은 그가 방문한 섬 자체를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다기보다는 그날의 감정과 상상들이 우연의 요소들로 재구성되어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한 롤에 담긴 24장의 사진을 펼쳐 논 <헤엄쳐 만든 섬>은 절반 정도 타버린 상태의 이미지로 시작한다. 마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후 나열된 사진들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작가의 걸음과 시간을 상상하게 되고, 마치 그 장소에 작가와 함께 있는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사진에 찍힌 ‘틈’으로 인해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불어 색이 바래진 흑백 컬러와 과거의 현실에 겹쳐진 물자국 및 스크래치는 시간의 지연 속에서 도통 어느 시대에 찍었는지 모르게끔 만드는 요소가 되어 연약한 기억의 발판이 된다.

  • 필름에 가하는 실험은 오세라 작가의 <예기치 못한 기쁨 Joie inattendue>(2019-2020)에서도 나타난다. 작가는 ‘1. 촬영 / 필름 현상 중 우연히 일어나는 사고를 발견하기. 2. 고장 난 카메라를 사용하기.  3. 고의적으로 사고와 오류를 일으키는 실험하기.’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필름에 실험을 가하여 기억과 망각의 프로세스를 탐구한다. 즉, 작가는 필름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상상하여 과거를 재구성하고, 분명 실존하는 것들을 찍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래의 환영적 공간을 현상한다. 이렇게 “불가능한 기억”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는 행위는 결코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는 행위가 된다.

  • 한편, 사진의 현상학적 특성을 분석한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고대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 이미지 안에 ‘유적지(지시체)의 시간, 사진가의 시간, 관람객의 시간’이 중첩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이미지에 여러 시간대의 겹침은 오세라 작가의 작업에서 나타난 ‘이 섬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시간, 작가의 시간, 지금 이 사진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시간’이 겹친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부터 순간들이 겹쳐져 새로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생성됨에 주목해왔다. 그 순간이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서부터 후반 작업(현상과 인화)의 순간, 그리고 그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그 순간*”이 그것이다. *오세라 작가의 <나는 이미 여기에 있었다 Je Suis Déjà Venue Ici>(2019-2020) 작업 노트 

  • 오세라의 이전 작업 중 하나인 <나는 이미 여기에 있었다 Je Suis Déjà Venue Ici>라는 제목은 그가 사진의 시간성에 대해 주목해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그는 계속해서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인간의 프로세스와 광학 기계의 프로세스를 비교하며, 결코 재현하지 못할 시간성을 재현해 내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시대에 점점 사라지는 필름을 사용하고, 더 나아가 직접 현상과 인화를 진행하며, 그 사이에 필름에 손상을 입히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적시고 말리는 현상 과정을 정화의 과정이라 일컬으며, 하나의 수행 과정으로 인식한다. 자신이 직접 그곳에서 찍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환영의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처럼, 내가 인식한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진이라는 매체가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참고자료 

    박상우,「롤랑 바르트의 ‘그것이-존재-했음’, 놀라움, 광기」,『영상문화』31권, 2017

    황선영,「데리다의 사진론과 리히터의 사진-회화」,『현대미술학 논문집』제24권 2호, 현대미술학회, 2020

    황지원

    사회를 구성하고 규정하는 존재들에 관심이 있으며, 실재가 무엇인지 쫓는다.

    이를 위해 세계를 재현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매개하는 매체를 연구하고 있다.

  • 오세라

    오세라(b.1990)는 작업 과정 중에 마주하는 모든 운명적 만남들에 주목한다. 특히, 아날로그 사진 프로세스 중에 발생하는 우연적인 작용들에 집중하거나, 그 프로세스 자체를 통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발견하곤 한다. 프랑스 마르세유 보자르에서 수학했으며, 전시 《어쩌면 세상에 없는》, 《LOST》, 《자연스러운 사람들》에 참여했다.

  • 헤엄쳐 만든 섬 | 오세라 개인전

    오프닝 | 2023년 3월 24일 (금) 오후 5시

    그래픽 디자인 | 차지량

    전경 사진 | 허유

    평문 | 황지원

    도움 | 드림팝

    주최 | Pluripotent Art Space